
21세기 중반 어느날, 한여름 햇볕이 백사장을 뜨겁게 달구는 성수기 어느 해수욕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조인간 AK-207은 아이스크림이 든 아이스박스를 어깨에 멘 채, 행락객으로 붐비는 해변을 조심스레 누비고 있었다. 키는 백오십 센티미터가량에 대머리에다 유난히 못생긴 로봇이었다. 그가 로봇이라는 사실은 이마 가운데에 찍힌 곤지와 목에 걸린 로봇 등록증으로 알수 있었다.
로봇 등록증
명칭: AK-207-33176
면허: 행상/3종
소속: 3급 로봇공제조합
제조일자: 2041년 3월 MADE IN CHINA
로봇은 그 종류마다 키와 몸무게 제한이 있었고 사람과의 구분을 위해 머리털을 붙일 수 없었으며 얼굴 가죽을 아무렇게나 만들어 붙여놓는 바람에 조악해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급여가 낮거나 위험하거나 혐오스러운 일에 이십여년 전부터 로봇이 투입되었고, 그중 AK-207 부류의 로봇들은 복고풍을 선호하는 인간들을 위해 20세기 풍경을 재현하는 일에 쓰이고 있었다.
키가 작은 그는 모래밭에서 아이스박스를 질질 끌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의 궤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목에 두른 흰 수건으로 가끔 이마를 닦는 척했는데, 땀을 흘리지 않는 그였기에 그 행동은 대인(對人) 서비스 차원이었다. 그의 가슴팍에 내장된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이스께에에끼” 하는 소리에 그를 불러세워 얼음과자를 사는 피서객들이 더러 있었다.
장마가 걷힌 요 며칠 전부터 햇빛이 강하게 내리비치자 그는 백사장이 지나치게 밝아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주에 지정 수리센터에서 정기점검을 받기로 되어 있었지만 어제 로봇공제조합으로부터 통보받기로는 수리 대기 건수가 많아서 AK-207의 점검을 한달가량 미룬다는 것이었다. 그는 안구 조리개 바깥에 위치한 엔디 필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을 해당 에러코드로 알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근경이 초점 나간 듯 흐려보였고 원경은 잘 보였지만 너무 밝은 일부 물체의 구별이 어려웠다.
노랑머리 남자노인에게 부라보콘과 바밤바를 팔고 나서 몸을 돌려 두세 발짝 내딛던 그의 왼발에 물컹한 무언가가 채였다. 두살배기 어린아이가 아장아장 걷다가 그의 발길에 차여 나동그라진 것이다. 순간 AK-207은 당황했지만 매뉴얼대로 가만히 있었다. 그의 바로 앞에서 그 아이가 엎어져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 몇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곧 꽁지머리를 한 덩치 좋은 중년남자가 “동빈아!” 외치며 달려와서 아이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래도 아이의 울음은 잦아들지 않았다. 아이의 다리가 날카로운 조개껍데기에 부딪쳤는지 피가 조금 나고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달려와서 아이를 넘겨받아 근처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꽁지머리 남자는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인조인간 앞에 우뚝 섰다. 백구십 센티미터 거구의 남자 앞에 선 AK-207은 건장한 레슬러 앞에 선 초등학생 같았다. 꽁지머리는 상대의 몰골을 아래위로 훑으며 경멸스럽게 말했다.
“네가 그랬냐?”
“네.”
로봇은 매뉴얼대로 고개를 숙였다.
다음 순간 꽁지머리는 원반던지기라도 하듯 반원을 크게 그리며 로봇의 머리통을 거세게 내리쳤다. 로봇은 튕겨나가 백사장을 나뒹굴었고, 아이스박스 또한 내동댕이쳐지면서 그 내용물이 쏟아져나왔다. 메로나, 비비빅, 수박바, 빵또아, 떡붕어싸만코 등이 밀려온 죽은 물고기들처럼 알록달록하게 흩어졌다. 꽁지머리는 때렸던 손이 아픈지 그 손을 다른 손으로 잡고서, 중거리포를 쏘는 축구선수처럼 뛰어가 로봇의 배를 걷어찼다. 로봇은 물가에 떨어졌고 꽁지머리는 제 발을 감싸쥐고 신음을 흘렸다. 로봇의 배는 튼튼한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다. 꽁지머리는 두리번거리다가, 조수에 떠밀려온 낡은 각목을 발견하고는 절뚝거리며 그것을 주워 로봇에게로 다가갔다. 밀물이 로봇의 다리를 찰랑찰랑 적시고 있었다. 문득 꽁지머리 김민철 앞에 어떤 형체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선생님.”
팔순쯤 되어보이는 늙은 남자였다. 노인의 팔에는 질서라고 쓴 노란 완장이 둘러져 있었다.
“왜요?”
“제가 지켜봤는데 이러시면 안됩니다. 이성적으로 해결하셔야죠.”
“이성적? 당신 아들이 피를 흘려도 그런 말을 하겠소?”
노인의 눈썹이 꿈틀거렸지만 목소리와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저는 아들이 없습니다. 딸도 없고요. 자식은 키워봤자 소용없지요.”
“안 물어봤습니다.”
“선생님, 자제분이 다친 건 유감이지만 로봇을 더이상 폭행하는 건 선생님께 이로울 게 없습니다. 이 정도에서 마무리하시죠.”
“폭행? 이 양반이!”
노인의 안면 근육이 꿈틀거렸지만 이번에도 참는 듯했다. 김민철이 문득 자세를 낮추며 목소리를 누그러뜨렸다.
“네, 어르신. 이성적으로 말할게요. ‘로봇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사람은 로봇에게 그 열배의 보상을 청구할 수 있다.’ 맞죠?”
“그렇죠.”
“내 아들이 다친 거 딱 열배만 저놈에게 돌려주고 싶어요.”
“이미 열배가 된 것 같은데요.”
“내 아들 치료비가 얼마나 나올지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저놈, 저 쇠붙이 로봇이 내 귀한 아들을 다치게 했다고요. 저 덜떨어진 놈들을 하루빨리 이 세상에서 몰아내야 돼요. 온갖 지저분한 일만 하고, 생긴 것도 혐오스럽고, 아무리 로봇이라지만 남에게 피해는 끼치지 말아야죠. 툭하면 사고치고 실수하고, 로봇이라고 봐주고, 얼마전엔 사람도 죽였잖아요!”
“선생님은 왜 그렇게 로봇을 싫어합니까? 솔직히 말해 저기 있는 텐트들 전부 로봇들이 공장에서 만들어서 저렴한 거 아닙니까? 그리고 로봇이 운전하는 차는 사람이 운전하는 차보다 사고율이 현저히 낮고요. 생긴 게 저래서 그렇지 일부 덜떨어진 인간보다 못할 게 없지요. 흠!”
“하하. 이거, 저한테 교육합니까? 혹시 가족이나 친척 중에 로봇이 잘되면 덕을 보는 사람이라도 있습니까? 저리 비키세요.”
김민철이 노인 쪽으로 팔을 내젓자 노인이 그의 팔뚝을 잡았다.
“안됩니다. 로봇에게도 권리가 있어요. 만일 폭행을 지속한다면 그 장면을 촬영해서 로봇공제조합에 제보하겠습니다.”
김민철이 제 팔을 빼내면서 말했다.
“미쳤군. 혹시 아저씨가 로봇 아니오?”
하면서 김민철은 AK-207 쪽을 힐끗했다.
“아니면 저 녀석이 아저씨 아들이라도 됩니까? 흐흐.”
“내 나이 팔십이오. 1970년생입니다. 보아하니 마흔쯤 된 것 같은데 당신이 태어나기도 전에 내 첫 아들이……”
“제가 많이 어려서 죄송하고요. 제 아들 다친 거 사진 찍어서 로봇이 그랬다고, 로봇들 권리 박탈하자고 청와대 민원 넣겠습니다. 그리고 저 로봇 인식표 스캔해서 전과가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에 취직할 자격이 없는 로봇인데 아저씨가 저 녀석 뒤를 봐줘서 여기에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내 아들이 다친 것일 수도 있고요.”
팔순 노인의 얼굴에 고민의 징표가 떠올랐다. 잠시 후에 노인이 길을 비키며 말했다.
“대신 저 녀석의 민감한 머리와 목 쪽은 때리지 마시오. 부탁합니다.”
“흐흐. 아무래도 저 녀석이 영감님 아들인 모양이군.”
김민철은 각목을 휘두르며 로봇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밀물은 이제 로봇의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김민철이 일을 치르는 동안 누구도 그를 말리지 못했다. 기세가 하도 등등했기 때문이 었다. 팔순 노인은 고개를 돌려 그 광경을 외면했고, 구경하는 사람들 중에 유난히 눈빛을 반짝이는 이들이 두엇 있었다. 몇몇 철없는 노인과 아이들이 한쪽에 널브러진 아이스크림을 줍느라 여념이 없었다.
그 아이가 사라진 것은 그로부터 한시간쯤 뒤였다. 김민철이 공중화장실에서 나와서 텐트로 갔을 때 그의 아내는 물가에서 조개껍질을 줍고 있었다. 텐트 안에는 아이가 없었다.
“빈이 어디 있어?”
남편의 말에 아내는 뒤돌아보며 대답했다.
“텐트에 없어?”
텐트에 없었다. 주위에도 없었다. 두사람은 사방으로 찾아다녔지만 아이는 없었다.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작고 허름한 건물 안에 아까 그 팔순 노인이 완장을 찬 채 앉아 있었다.
“내가 관리사무소 소장입니다.”
“방송 좀 해주시겠어요?”
김민철은 아까보다 공손해져 있었다. 방송이 나가고 한시간이 지나도 아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를 봤다는 제보도 없었다.
“혹시 여기 다른 로봇은 없습니까?”
“흠, 하나 있는데 아까 당신이 두드려팬 로봇을 수리센터로 보낼 때 보호자로 함께 따라간 로봇이 있어요. 왜 그래요?”
“수상쩍어서……”
“그 로봇을 의심하는 거요?”
“그게 아니라…… 혹시라도……”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지만 아이를 되찾을 가망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를 봤다는 목격자가 한명 있긴 했다. 오후 네시경, 그러니까 아이가 실종될 무렵, 그 해수욕장 주차장에서 까르르 웃는 두살쯤 되어보이는 어린아이를 커다란 아이스박스에 넣어 뒷좌석에 싣고 출발한 차량이 있다고 했다. 목격자는 아이와 아버지가 장난치는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했다. 그 차 운전자에게 로봇의 표식은 없었으며 사람 같았다고 했다. 키는 백육십 센티미터가량. 주변 시시티브이를 통해 차량번호를 확인했으나 등록되지 않은 차량으로 드러났다. 그 차량 정보를 전국 경찰서와 중고차 매매상, 폐차장, 정비소 등에 알렸지만 그 어디에서도 그 차량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종 아동을 찾습니다!
이름: 김동빈. 남. 실종 시 23개월. 2048년 9월생.
××해수욕장에서 실종. 목 가운데 까만 반점이 있음.
전단지를 발길 닿는 곳마다 붙이고 돌렸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아이가 실종된 지 두달째 되던 어느날, 김민철의 집 우편함에 쪽지 하나가 날아들었다.
당신의 폭력 성향을 물려받아 이 아이가 미래에 위험인물이 될 수도 있으니 우리가 키우겠습니다. 성년이 될 때 되돌려보낼 테니 마음 편하게 가지세요.
시시티브이를 확인해보니 모자와 마스크를 쓴 키 작은 자가 왔다 갔었다. 더이상의 단서가 없어서 그자의 정체를 추적할 수 없었다. 김민철은 그자가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라고 확신했다. 자기 아들을 납치한 자는, AK-207에겐 알리바이가 있으니 아니겠지만 그의 동료이거나 뜻을 함께하는 로봇공제조합 조합원일 수도 있었다.

세월은 빠르게 흘렀다. 그동안 로봇은 인간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필수요소로 자리 잡았고, 그들의 권리 역시 향상되었다. 로봇평등연대와 비인간권리쟁취투쟁본부와 녹색당 같은 단체들의 활약 덕분이기도 했고 사람들의 인식 수준이 향상된 때문이기도 했다. 주홍글씨 같았던 이마의 곤지는 사라지고 머리털을 부착할 수도 있었다. 대머리를 선호하는 인간들이 늘어나면서 그중 일부가 대머리 로봇으로 오인되어 부당한 처우를 받는 일이 가끔 있었기 때문에 이에 문제를 제기한 탓도 있었다. 어떠한 경우에도 로봇은 인간을 공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사라지고, 정당한 사유가 있을 시 자기방어 차원에서 로봇도 최소한의 물리력을 행사할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로봇이 인간에게 위해를 끼쳤다면 딱 그만큼만 배상하면 되었다. 그리고 로봇에게도 최저임금제가 적용되었고 최저임금은 인간의 70퍼센트로 정해졌다. 로봇의 키도 백칠십 센티미터까지 허용되었고 몸무게는 안전상 이유로 여전히 인간의 몸무게 60퍼센트 이내로 제한되었다. 이제 한 개체를 로봇으로 식별할 수 있는 외적 표식은 목에 걸린 로봇 등록증(로봇이 로봇 등록증을 목에 걸고 있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벌칙은 이전보다 강화되었다)과 눈동자의 공허함과 손톱이나 피부의 엉성함과 투박함 정도였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다. 김민철이 아들을 잃은 지 십육년째였다. 그동안 민철은 술에 취해 살았고 아내와는 이혼했다. 그는 나이보다 훨씬 늙어보였다. 오십대였지만 흰머리와 주름살, 거친 피부, 걸걸한 목소리, 구부정한 허리, 누추한 옷차림 때문에 칠십대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민철은 오늘도 낮부터 취해서 휘청휘청 길을 가고 있었다. 전철역 근처에서 시위대를 맞닥뜨렸다.
“로봇에게 생존권을 보장하라!”
“로봇은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살려고 하는 생명이다!”
“로봇에게 결혼을 허용하라!”
“로봇에게 투표권을 부여하자!”
이런 피켓과 구호가 난무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군, 민철은 생각했다.
다른 건 다 허용한다 해도 결혼이라니? 로봇과 로봇이 결혼하는 건 소꿉장난으로 보아 넘긴다 해도 인간과 로봇의 결혼이라니.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와 결혼했다가 고양이가 죽자 반려견과 재혼한 여자, 염소와 결혼식을 올린 남자, 애니메이션 캐릭터·만화 캐릭터·AI로 만든 가상 캐릭터와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간 사람들……. 미쳐도 단단히 미쳤지. 결혼은 인간과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유전자 복제를 통한 개체 존속 수단이 아니던가. 그는 시위대를 향해 빈 깡통을 걷어차며 침을 퉤 뱄었다. 더러운 것들.
로봇도 더럽고 그 로봇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도 더러웠다.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은, 특히 그 자신의 불행의 시작은 로봇들의 활보에 있었다. 로봇만 등장하지 않았어도 아들 김동빈은 로봇에게 납치되지 않았을 테고 지금쯤 늠름한 청년이 되어가고 있을 터였다. 죽일 놈의 로봇들, 그리고 그 추종자들…….

그는 골목길 모퉁이를 돌다가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고개를 들어보니 젊은 여자였다. 로봇 등록증을 목에 걸고 있었다! 지난 십육년 동안 로봇기술이 현격히 발전해서 인간과 다른 점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진 인조인간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생기가 돌았다. 취기를 빌어 연기를 펼쳤다.
“아이고 어깨야! 아이고 허리야!”
“괜찮으세요?”
여자 로봇은 당황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잠깐 이리 와봐. 얘기 좀 해.”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옆 빌라 주차장 구석으로 끌고 갔다.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어떡할래?”
“보상해드리겠습니다. 함께 병원에 가시죠.”
여자 로봇의 말소리는 최근 에스에프 로맨틱코미디로 유명해진 여배우 정이안의 것이었다. 로봇의 입 움직임과 말소리의 타이밍이 조금 달라서 기이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너 로봇이지? 섹스가 뭔지 알아?”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가르쳐줄게. 그러면 너 돈 안 내도 돼. 나랑 병원에 가지 않아도 돼. 이 아저씨 말만 잘 들으면.”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이리 와봐.”
그는 그녀의 엉덩이와 다리, 가슴을 옷 위에서 가만히 더듬어 나갔다. 딱딱하고 차갑고 거친 촉감이었지만 그는 취중이라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거긴 안돼요!”
그녀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
“넌 로봇이잖아. 안되긴 뭐가 안돼.”
“안돼요. 안된다고요.”
그녀는 날카롭게 외치며 그의 손을 밀어냈다.
“이년이. 로봇 주제에! 너도 남자가 있다는 거냐? 미친 쇳덩이!”
그는 그녀를 벽에 밀어붙이곤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반항하자 그는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그때 어떤 손아귀가 그를 붙잡아 거칠게 밀어젖혔다. 그는 옆으로 밀려나면서 벽 모퉁이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다. 털썩 주저앉으며 그 형체를 올려다보았다.
갓 스물쯤 되어보이는 건장한 청년이었다.
“미친 영감. 곱게 늙어야지.”
민철은 청년을 멍하니 올려다볼 뿐이었다.
“술까지 처먹었군. 이 로봇 혐오자.”
여자 로봇이 청년에게 다가가 안겼다.
“무서웠어.”
청년은 민철에게 다가가며 눈을 부라렸다.
“사회적 약자를 괴롭히는 것들은 죽어야 해.”
민철의 점점 흐릿해져오는 시야에 청년의 목 가운데에 있는 검은 반점이 보였다.